건강한 자아는

공감적 조율을 할 수 있는 능력

다른 사람의 욕구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

필요할 때 자신의 욕구 만족을 지연 시킬 수 있는 능력

자신을 달랠 수 있는 능력이다

- 헤인즈 코호트 -

 

에릭슨의 2단계는 프로이드의 항문기에 해당하는 기간으로 1세 - 3세 사이를 말합니다. 에릭슨은 항문기라는 말 대신에 자치심 즉 자신의 의지(Will)가 표면화 되는 중요한 시기로  보았습니다. 이 시기에 자치심으로 연결되느냐? 아니면 의심, 수치심으로 연결되느냐의 기본이 형성되는 기간으로 보았습니다. 이 기간에 신체적 중심은 먹는 것, 입으로 빠는 것, 씹는 것의 중심에서 배설하는 항문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배설하는 즐거움이 중심이 됩니다. 본능적인 것보다 주위, 환경, 사회 문화적 압력이 생리적 기관에 가해지게 됩니다. 에릭슨은 아기가 자신의 몸을 조절하는 것을 배우는 기간으로 보고 전반기, 후반기의 특징으로 나누었습니다.

 전반기의 특징은 아기가 자신의 몸을 컨트롤하는 것을 배우는 기간으로 이 기간에 아기는 두 개의 모순된 갈등을 극복해야 합니다. 소변 근육과 대변 근육은 8자형 근육으로 되어 있고 이 근육이 서로 모순됩니다. 이 근육을 생리학에서는 괄약 근육으로 부릅니다. 소변 근육이 열리면 대변 근육이 닫히고 대변 근육이 열리면 소면 근육이 닫히게 됩니다. 이 시기에 부모님이 지나치게 엄격한 대, 소변 훈련을 시키거나 강압을 하게 되면 대, 소변 훈련이 스트레스로 느껴지게 되면 아기는 대, 소변을 할 때 지나치게 자신의 몸을 의식하게 되고 소변과 대변의 모순된 갈등에 말려들게 됩니다. 즉 자율 신경은 스스로 움직이는 신경으로 위, 장, 호흡, 심장 박동 그리고 소화 기관, 배설 기관 등을 컨트롤하는 신경 조직입니다. 이 신경 조직을 인위적으로 컨트롤하려고 하면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초등학교 아동들에게 제식 훈련을 시킬 때 손과 발을 맞추는 구령에 의식을 하게 만들면 손과 발이 같이 올라가는 행동을 보이게 되고 부자연스럽게 보이고 혼란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자율신경은 의식하지 않고 긴장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의식하게 되거나 인위적으로 컨트롤하려고 하게 되면 문제를 일으킵니다. 위 궤양이나 십이지 궤양 등도 비슷합니다. 위 궤양이나 십이지 궤양 등은 심리적인 문제와 직결 되어 있습니다. 다른 문제가 없이 마음이 편안하면 소화기관이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되고 음식물의 소화는 잘 되어가지만 지나치게 긴장하게 되거나 고민, 갈등이 생기게 되면 교감 신경의 과중한 부담으로 소화 기능이 억제되어 장의 연동 운동이 방해를 받게 됩니다. 그 결과 소화가 잘 안되고 속이 더부룩하게 되면 자신의 위게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닌가? 왜 잘 되던 소화가 안 될까? 금방 먹은 음식이 체한 것 아닐까? 등의 의식적 컨트롤 감각이 위에 자율 신경 조직을 인위적으로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그 결과 소화가 더욱 안 되고 속이 더욱 더부룩하게 되면 악순환의 연속이 이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심하면 위궤양, 장 궤야, 십이지 궤양 등으로 확대 됩니다. 아기의 경우에 대, 소변 시에 엄마의 과중한 처벌로 깨끗하게 하려고 하거나 대, 소변을 두려워하게 되면 소변이 나올 때 대변이 같이 나오는 똥 싸게 혹은 긴장하게 되면 방광이 위축되어 소변이 자주 나오게 되고 소변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오줌싸개가 됩니다. 두 개의 모순적 갈등은 방출과 보유, 긴장과 이완 등과도 관계 있습니다. 이 시기에 양면 갈등의 통합이 일어나는 시기입니다. 내가 보내고 싶을 때에 내 보내고 내가 대, 소변을 보기 싫을 때는 보지 않겠다는 내 의지에 따르게 하거나 내 의지가 인정을 받아야 하는 시기입니다. 대, 소변을 하고 싶을 때 대, 소변을 해야 하는데 의부의 강압이 가해지면 아기는 대, 소변 훈련이 즐거운 것이 아니고 고통이 되어버리게 됩니다. 대, 소변 훈련이 스트레스가 되어버립니다. 지나치게 모든 것을 방출해버리는 것이 어른들의 설사입니다. 내 보내는 것을 싫어해서 지나치게 모아두려고 하는 것이 변비 입니다.

사례: 변비와 설사는 심리적 긴장과 관계 있습니다. 새로운 환경 즉 수학 여행, 친척들 방문으로 자신의 집이 아닌 외지에서 잠을 자는 경우에 화장실에서 대변이 잘 안 나오는 것을 많이 경험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대학 3학년인 K군은 중간 고사나 기말 고사 일주일 전이 되면 설사를 하게 되어 치료를 받으러 온 것이었습니다. 고 2학년 때부터 이러한 증세가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시험이 끝나면 설사는 깨끗이 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과도한 긴장이 소화 기능에 간섭해서 장의 연동 운동을 억제하게 되었고 이것은 어린 시절의 대, 소변 훈련 때 방출과 보유의 양면적 갈등이 통합되지 않는 것과 뿌리를 같이하고 있음을 분석해 낼 수 있었습니다.

 괄약 근육의 컨트롤은 양면 갈등의 통합으로 연결 됩니다. 이 통합은 욕구의 컨트롤, 참는 것을 배우고, 욕구의 충동을 컨트롤하는 것으로 확대됩니다. 대, 소변을 참은 것을 내 욕구의 즉각적 충족을 참는 것으로 확대됩니다. 이것은 대인관계의 핵심인 맺는 것과 끊는 것, 주는 것과 받는 것,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의 통합으로 연결 됩니다. 충동을 억제하고 참을성을 기르는 것을 배우는 것의 최초의 시기가 바로 이 시기입니다.

사례: 40대 초반의 K 부인이 남편의 문제로 치료자를 찾아왔습니다. IMF로 실직한 남편은 집에서 6개월 정도 쉬다가 친한 친구와 동업으로 호프집을 경영 하게 되었고 총 지배인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부인이 살고 있는 지역이 아니고 먼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되어 부인과 떨어져 생활하게 되었고 주로 야간에 일을 하고 낮에는 집에서 휴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1년 정도 지난 후에 부인은 시동생으로부터 남편이 다른 여성과 살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시어머니와 시동생과 함께 상경하여 남편의 주거지를 조사한 결과 남편이 어떤 유부녀와 동거생활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 문제로 치료자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부인에게 별 일 아니니 참고 기다려 달라고 했고 남편이 그 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 부인은 깜짝 놀라게 된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낮에는 쉬고 저녁부터 영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낮에 쉬는 시간에 보험 설계사인 어떤 부인의 하소연을 듣고 동정을 표현하게 된 것이 문제의 시발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보험사 부인은 자신의 남편에 대한 불평 불만을 호프집 지배인인 K부인의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보험사 부인은 자폐증 아들이 있었고 이것에다 남편의 수입이 적어서 자신이 보험사에 일하게 되면서 받는 스트레스 등을 K 부인의 남편에게 하소연하게 되었고 K 부인의 남편이 동정심을 보이게 되자 딸을 데리고 집에서 가출을 하게 되어 K 부인의 남편이 임시로 거처를 마련해 준 것이 외도의 시작이 된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연민과 동정심에서 출발한 것이 불륜으로 연결되게 된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맺는 것은 잘하는데 끊는 것을 잘못한다는 것을 부인은 알고 있었습니다. 맺고 끊는 것을 잘못해서 생긴 문제였습니다.

사례: 친한 친구들의 요구에 매정하게 NO라고 말을 못하고 보증을 섰다가 IMF로 인해서 친구의 사업이 망하게 되자 가산을 탕진하고 쫓게 나게 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대인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맺는 것과 끊는 것을 잘하지 못하면 대인 관계 갈등에 휘말려 들어가게 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항문기 때 그 근원이 있음을 자신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을 대인관계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대인관계를 더 좋게 하는 것임을 모르고 있습니다. 거부하면 상대로부터 버림을 받거나 관계가 끊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면 부모님의 처벌이 따라 왔거나 자신의 의지를 내 세우면 부모님이 싫어해서 부모님의 눈치를 보게 되었고 상대에게 잘 보이려고 한 것에서 시작되어 어른이 되어서 대인관계의 형성에서 문제를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후반기의 특징은 아기들이 자신의 신체적인 대 소변 훈련을 위한 괄약 근육을 컨트롤하게 되면 자신의 몸을 움직이는 것을 컨트롤로 바뀌게 되고 이것이 주변 환경의 컨트롤로 이어지는 기간입니다. 마음의 에너지가 주변 환경으로 옮겨지는 기간입니다. 주변 환경을 뒤집고 뒤엎어버리고 찢고 부수고 하는 기간입니다. 환경 탐색에서 오는 즐거움을 아기로 하여금 더욱더 주변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하고 환경을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됩니다. 에릭슨은 이 항문기 시기를 자신감 혹은 자치심이 형성되는 최초의 시기로 보았습니다. 자치심 즉 자신감은 한자로 自信感으로 스스로 자신을 믿는 마음을 말합니다. 자신의 의지를 믿는 마음, 자신의 능력을 믿는 마음이 됩니다. 이것이 자아의 핵심이 됩니다. 이 시기에 자신의 생리적 컨트롤을 믿지 못하게 되면 즉 오줌싸개, 똥 싸개가 되면 자신의 신체를 컨트롤하는 것에 에너지가 집중하게 되고 환경 탐색을 소홀하게 됩니다. 즉 환경 탐색에 에너지가 흘러가지 않고 자신의 항문과 요도 쪽으로 에너지가 흘러가게 됩니다. 수치심, 의심은 자신의 자아의 불신에서 오게 됩니다. 1단계의 믿음(信)과 불신(不信) 앞에 자신의 의지인 스스로 자(自)를 붙이면 自信 혹은 自不信이 됩니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면 자아를 의심(doubt), 수치심(shame)이 됩니다. 에릭슨은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 의심과 수치심이라고 했습니다. 의심과 수치심은 항문과 관계 있습니다. 과거 우리 조상 들이 변소를 뒷간으로 불렀고 "뒤가 찜찜하다"는 말은 의심스럽다, 불안하다는 말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과거에 많이 사용했던 "나는 백(back)이 좋다, 삼촌의 백이 있다" 등은 의존을 의미합니다. 백(back)이라는 말은 영어에서 "뒤"라는 말입니다. 뒤가 든든하다는 말로 의존할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적은 항상 뒤에서 공격합니다. 뒤는 취약점을 의미합니다. 불안하면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즉 두려움, 의심, 불안을 의미합니다. 치부를 보인다는 말은 치부 즉 항문과 성기를 말합니다. 이 말을 수치심, 모욕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뒤에 숨는다, 뒤에 숨긴다는 말은 부끄러움, 수치심을 상징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의 잘못을 볼까봐 숨긴다는 말로 부끄러움, 수치심을 말합니다. 뒷 부분 즉 항문과 성기는 우리가 볼 수 없는 부분으로 인간의 어두운 부분으로 취약점, 불안, 부끄러움 등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의 단점을 볼까 부끄러워하면 뒤에 숨거나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합니다. 남이 해 주기를 기다리면 의존이 됩니다. 자신감이 없으면 의존하게 됩니다. 이러한 의심, 불안, 수치심, 부끄러움은 1세 - 3세 때 생기는 것으로 성인이 되어 대인관계에 자신감을 잃게 되거나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게 되거나 외부 환경에 대한 컨트롤 감각을 상실하게 되면 무기력하게 됩니다. 신경증 환자의 특징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것이 특징입니다. 에너지가 외부 환경의 컨트롤로 흘러가지 않고 내면의 자아에게로 흘러가는 것이 특징입니다. 남보다 잘한다는 자신감이 있을 때 항상 앞에 나서게 되고 불안하거나, 부끄러우면 남의 뒤에 서거나 숨거나 남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에릭슨은 1세 - 3세의 기간을 자치심, 자신감이 형성되는 기간으로 보고 이것을 자신감 즉 confidence, autonomy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대신에 부끄러움, 수치심이 형성되는 기간으로 shame, doubt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례: 이솝 우화에는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항문과 관계 있음을 보여줍니다. 제우스는 인간을 만들 때 회노애락 등 모든 감정을 가슴 속에 집어 넣었으나 부끄러움을 넣는 것을 깜빡 잊었습니다. 이후에 제우스는 뒤 늦게 부끄러움이 빠진 것을 알았으나 이미 봉인해버린 가슴을 다시 열 수가 없어서 항문을 통해서 부끄러움을 들여보냈다는 이솝 우화의 이야기에서 부끄러움은 항문과 관계 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변소 문화는 인간의 진화와 함께 해 왔습니다. 농경 시대에 변소는 항상 집에서 가장 멀리 있었습니다. 더러운 곳으로 인식되어왔습니다. 변소와 처가 집은 멀리 있을 수록 좋다고 했습니다. 변소는 멀리 있을 수록 구린내가 덜 나고 처가 집은 멀리 있을 수록 갈등이 적게 알려지고 자신들의 치부가 덜 전해 진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산업 사회로 진화 하면서 변소는 이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문화가 일상화 되면서 변소는 화장을 하는 장소로 되었습니다. 안방과 거실에 변소가 위치하게 되었고 더러운 곳에서 위생적인 곳으로 바뀐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구순기의 먹는 것과 항문기의 대, 소변이 인간에게 왜 가장 중요한 것인가?의 정신분석적 설명과 일치 합니다. 사람들이 잘 먹고 잘 배설하면 건강하다는 신호로 의학계에서는 널리 알려져 왔습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똥을 돈(money)과 관계 있다고 봅니다. 똥의 색깔과 황금의 색깔이 같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똥과 돈은 소유의 개념도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원시 부족들이 동물의 똥의 귀중한 자산, 소의 똥을 벽에 바르고(아프리카에서는 소의 똥을 방부제로 사용), 연료로도 사용합니다. 염소, 말의 똥과 유목민과의 관계, 그리고 아기의 똥은 엄마에게 선물입니다. 의사들은 똥과 오줌을 가지고 건강을 측정합니다. 똥은 건강을 상징합니다. 아기의 똥을 보고 엄마가 아기의 건강을 측정하는 것과 의사들이 환자의 똥과 오줌을 보고 건강을 측정하는 것과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내 몸 안에서 나왔으니 내 몸의 상태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똥과 싸우는 사람들이 변비와 설사 환자들이 아닙니까? 설사 환자들은 더러운 내 몸의 불안을 모두 내 보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불쾌감, 스트레스를 받으면 설사가 납니다. 이것은 몸의 불쾌감을 설사로 내 보내겠다는 상징적 의미입니다. 변비 환자는 똥을 보유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모으기를 좋아는 사람들입니다. 돈이나 수집을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항상 주워 모은다, 내 보이기 싫어한다. 스트레스 시에 내 보내기 싫다는 생각으로 모아두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스트레스 조차도 내 보내기 싫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유아들은 나(ego)와 내가 아닌 것(non-ego)을 구분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것은 복잡한 긴 과정을 거칩니다. 즐거움을 주는 모든 것은 내 것(ego)가 됩니다. 고통을 주는 모든 것은 나의 것이 아닌 것(non-ego)가 됩니다. 이것은 즐거움을 주는 것은 모두 입에 넣으려고 하고 삼키려 한 것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고통스러운 것을 뱉어냅니다. 그러나 즐거운 것이라고 입에 가져갈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나의 것(mine)을 의미하게 됩니다. "나는 그들을 입에 넣고 싶지만 입에 넣을 수가 없다, 나는 그들을 상징적으로 입에 넣는 것으로 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아기가 자신의 몸의 일부였던 귀중한 보물로 상징되는 똥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다시 "나는 그들을 내 것이라고 부르고 싶다, 내 몸 안에 있어야 했던 것이 지금 내 몸 밖에 있다,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상징적으로 내 것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것이 소유의 개념입니다. 돈과 똥은 항상 소유하고 있을 수 없습니다. 언제나 내 보내야 합니다. 아까우면서도 내 보내야 합니다. 돈은 어른들이 소유하고 싶어합니다. 돈을 많이 가지면 자긍심이 올라갑니다. 똥과 돈은 둘 다 경멸의 대상입니다. "더럽다, 사람을 더럽게 만든다"라고 말합니다. 돈을 즐거움의 대상인 동시에 처벌의 대상이 됩니다.

 항문기의 보유는 항상 두 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상실의 두려움과 보유의 즐거움입니다. 수집광들은 이러한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Power는 자신의 컨트롤을 통해서 얻거나 다른 사람의 컨트롤을 통해서 얻게 됩니다. Power에 대한 강한 욕구는 항문기 때 괄약근육 컨트롤을 동반하는 power 감각에서 옵니다. Power에 대한 소망은 자신감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강박 신경증에서 항문기 즐거움과 관계된 많은 갈등들이 다시 가동하게 됩니다. 대, 소변 훈련의 특징은 즐거움의 보유가 따릅니다. 피교육자는 괴롭다는 말입니다. 어린이는 구순기에 받는 것을 배웠고 항문기에는 주는 것, 내 보내는 것을 배웁니다. 이 기간에 혼란은 대인관계에서 주는 것과 받는 것 즉 "give and take"의 균형에 혼란으로 연결됩니다. 정신분석 학자인 칼 아브라함(Karl Abraham)은 항문기의 특징들을 아래와 같이 열거합니다. 뒤에서 어떤 것을 쳐다보려는 경향,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으나 지연할 수 없거나 연기할 수 없는 경향, 맺었지만 끊을 수가 없다거나, 다른 사람을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해 달라고 하는 의존의 경향,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려는 경향인 옹고집적인 사람들이 포함됩니다. 이것은 똥을 상실하면서 새로운 것을 얻어서 보상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강박 신경증의 환자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돈과 시간을 합리적으로 잘 다루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정신분석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퇴행은 환자와 시간과의 관계를 꺼꾸로 돌려 놓은 것입니다. 어린시절의 본능과의 갈등이 되살아난 기간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 특징입니다. 질서 정연함 혹은 정리정돈(orderliness)은 항문기 때 위험한 본능에 대한 보호적 기능으로써 사용되기 시작했고 강박 신경증에서도 보호적 기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강박증 환자들은 반항적인 자신의 본능과 적대감에 위협을 받고 있는 환자들로서 질서, 정리정돈이 있는 한 보호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특히 돈과 시간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무의식적 항문기적 욕구는 항상 질서 정연함을 사보따쥐 하려고 합니다. 무질서 속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환자들은 자신의 생활을 규칙적으로 규제합니다. 어떤 것을 정해 놓고 꼭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이 규제가 환자의 행동을 통제하고 있는 한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하고 있는 것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자아가 붕괴 위협을 느낍니다. 이것은 무의식 속에는 늘 심층의 본능 속에는 무질서하고 결벽 대신에 더럽고 도덕주의 대신에 부도덕함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아(ego)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로서 반대행동 형성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사례: 성적 순결을 강조하는 부모는 자신들의 심층에는 성적 부정들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인에게 섹스 순결을 의심하거나 지나치게 섹스 행동을 문제 삼는 남편은 자신이 섹스 문제에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부인도 그러한지 항상 체크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인 바울은 원래는 예수의 박해자였습니다.

 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난 것에는 항상 부자연스러움에 대한 반동으로 극단에 간 것임을 말해줍니다. 어떤 특정한 부자연스러운 행동에는 반대행동 형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강박증 환자들은 룰(rules)을 따라가고 있는 한 잘못되었다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능은 그것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환자는 실제로 자신이 룰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충분한 룰이 모든  가능성을 지배하고 있는 한 룰이 충분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씻는 강박증의 벙어기재는 하지 않는 것(undoing)입니다. 항문기 퇴행이 섹스의 더러운 개념에 책임이 있습니다. 배신의 가능성은 씻음으로써 피할 수 있습니다. 강박 신경증 환자는 목욕이나 손을 씻거나 옷을 바꾸어 입음으로써 더러움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나쁜 감정을 씻어내는 것을 상징합니다. 실제로 규칙적인 사람은 규칙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깨끗한 사람은 어릴 때 깨끗하지 못했기 때문에 환경인 부모로부터 강요를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신경증 환자에 있어서는 원래의 본능적 충동에 대한 방어로서 옹고집, 질서정연함, 정리정돈, 깨끗한 결백증이 생겨난 것입니다.